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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PD/ 화담 서경덕과 시각 장애인의 집 찾기
왕현철 (전 KBS PD, 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 저자)
2024년 01월 31일 [4차산업행정뉴스]




 

                                          반가사유상


화담 서경덕은 중종 때의 인물로 개성의 박연폭포, 기생 황진이와 더불어서 송도삼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부친의 강권에 못 이겨서 과거를 쳐서 진사에 합격했으나 더 이상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벼슬길에는 뜻이 없었다.

 
그의 학문적 평판이 높아서 참봉직을 제수했으나 반납하고 전국의 명산대천을 두루 유람했다. 

 

그는 개성으로 돌아와서 화담 곁에 초가집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고 제자를 길렀다. 그의 학문은 모방이 아니라 스스로 깨쳐서 독자적인 이론을 세웠다. 그 덕택으로 아내에게는 무능한 가장이었으나 죽어서는 율곡 이이의 건의로 의정부 우의정에 추증됐다.

서경덕은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제 집을 찾지 못해서 길에서 우는 자를 만났다.

“너는 어찌 우느냐?”
“저는 다섯 살에 맹인(시각 장애인)이 돼서 20년이 되었습니다. 아침나절에 집을 나왔다가 갑자기 천지만물을 환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밭둑에 갈림길이 많고 대문들이 서로 같아서 제집을 구분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습니다.”

서경덕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시각 장애인이 집으로 돌아갈 방도를 알려준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다.

“다시 눈을 감아라.”

시각 장애인은 다시 눈을 감고 지팡이로 더듬으면서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가서 제집을 찾을 수 있었다. <열하일기>로 잘 알려진 연암 박지원의 <연암집 제5권/영대정잉묵>에 소개된 내용이다.

 

박지원은 이런 내용을 친구 유한준에게 편지 보내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시각 장애인이 눈 뜨고 제집을 찾지 못한 것은 색상(色相)이 뒤바뀌고 희비의 감정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지원은 이것을 망상이라고 했고, 망상을 없애는 해답도 제시했다. 그것은 지팡이로 더듬고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가는 것이 분수를 지키는 진정한 도리라고 했다.

 
올해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있다. 4월이다. 

 

정당과 출마자는 이미 시동을 걸었고 ‘나는 잘 났고, 상대는 못났다.’라고 열을 올리고 있다. 내 눈의 대들보는 보지 않고 상대 눈 속의 티눈만 본다. 

 

나의 상품을 잘 진열하는 것보다 상대의 상품을 깎아내리는데 더욱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모두가 국민 눈높이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국민이 원하는 정책은 토론과 양보를 통해서 입법으로 이끌어내지 않고, 그 잘못은 상대에 있다고 삿대질이다.

 
이러한 것은 갓 눈 뜬 시각 장애인처럼 눈앞에 펼쳐진 환상에 사로잡혀서 제집을 못 찾는 것과 같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헛말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유권자는 시각 장애인처럼 눈을 감고 촉각으로 더듬어 보자. 정당과 출마자가 쏟아낸 헛말의 실체가 보일 것이다.

 
인생은 때로는 눈을 떴으나 보이지 않고, 오히려 눈을 감아서 보이는 것이 있다. 선문답이 아니다. 학연· 지연으로 얽힌 선입관과 감정적 물결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화담 서경덕이 시각 장애인에게 가르쳐 준 대로 눈을 감고 각자의 집을 찾아보자. 나를 유혹하는 참말과 헛말이 구분될 것이고, 판단의 준거로 삼자.

4차산업행정뉴스 기자  69894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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