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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PD/ 정 많은 한국인, 친절한 일본인
왕현철 (전KBS-PD)
2023년 11월 26일 [4차산업행정뉴스]

 

독립운동가 박열과 연인이자 동지인 일본여성 카네코 후미코,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옆 <독립운동가의 길>에 조성된 벽화.

 

‘한국인=정’, ‘일본인=친절’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마 한국인은 정이 많고 일본인은 친절하다는 것에 대체로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본 생활과 일본의 한류 팬과 대화하면서 한국인=정’은 우리가 모르는 장점이 있고, ‘일본인=친절’은 함정이 있음을 알게 됐다.

나는 1989년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 때, 공항이나 식당, 백화점 등에서 일본인의 친절에 너무나 감동했다. 특히, 백화점에서 고르는 물건이 맘에 안 들어도 꼭 사야 할 것 같았다. 친절한 종업원을 뒤로하고 백화점을 나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랏샤이마세 (어서오세요)’라는 상냥한 인사와 미소는 물론, 때로는 종업원이 무릎을 꿇고 주문받을 때는 놀라서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대부분 일본 여행에서 일본인의 친절에 감동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일본인 친절의 비밀은 거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과 손님, ‘갑’과 ‘을’의 상거래 등 서비스에서 일본인의 친절은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이럴 때 일본인의 나긋나긋함은 우리의 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친절하다.

그러나 거래가 끝난 후, 일본인의 친절에 감동해서 그 사람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면 오히려 보호막을 치고 뒤로 물러난다. 때로는 찬바람이 쌩하고 부는 냉기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일본인에게는 조금 전의 그 친절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일본 식당 주인의 친절과 달리, 반찬으로 ‘다쿠앙(단무지)’ 몇 조각이 나오고, 그것도 덤으로 더 주지 않을 때는 한국의 음식점과 비교해서 실망감과 허전함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인의 친절과 그 허전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울과 도교에서 길을 물었을 때 각각의 상황을 보자. 먼저 도쿄에서 나의 경험담이다. KBS 도쿄 특파원의 사무실은 도쿄에서 가장 붐비는 시부야(渋谷)에 있다. 나는 PD 특파원으로 시부야의 음식점 등을 자주 이용했다.

내가 시부야에서 길 등을 물으면 일본인도 자신이 아는 것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반면 모르는 경우는 전혀 반응이 없다. 일본인은 주변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길을 묻을 만큼 적극적이지 않고, 혹시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심에는 ‘코우방(交番)’이 있다. 우리의 파출소보다도 더 작은 경찰 조직으로 도심의 곳곳에 있고, 코우방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지도가 벽에 걸려있어서 길 안내가 주요 임무이다. 외국인은 일본인에게 길을 묻기보다는 코우방에서 가서 길을 묻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외국인의 물음에 시스템으로 대응한다고 할까?

이처럼 일본인의 친절에는 거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친절이 그 사람의 속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일본인에게는 친절한 마음과 속내가 각각 존재한다. 두 마음을 허용한다.

반면, 한류 팬 이케다 쿠미코 씨가 서울에서 겪은 경험담은 달랐다. 그녀가 서울에서 길 등을 물었을 때, 한국인은 자신이 모르는 것조차도 그냥 모른다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 물어서 길을 끝까지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또한, 어떤 한국인은 자신의 손해까지도 감수하고까지 기어이 목적지까지 안내했다고 했다.

그녀는 길거리에서뿐만 아니라 음식점의 경험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의 음식점에서 주인이나 종업원의 투박한 모습이나, 반찬을 툭 던지듯이 상에 놓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런데 주문하지 않는 무료 반찬이 나오고, 반찬을 더 달라고 해도 웃으면서 추가로 내놓았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인과 대화하면 한국인은 금방 마음을 드러내서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일본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국민들과 비교할 때, 한국인의 마음 씀씀이는 친절을 넘어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고 했다.

이것을 우리는 보통 ‘정’이라고 한다. 우리의 표현에 ‘그놈의 정 때문에’라는 말에는 어느 정도 본심이 담겨있다. 우리는 두 마음을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편이다.

2012년 3월 25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핵 안보 정상회담의 참석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에서 한국말로 ‘정’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그는 한국 사람이 깊은 애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정’을 배웠다고 하면서, 그는 4개월 만에 다시 만난 이명박 대통령에게 오늘 다시 이 ‘정’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일본의 한류 팬들이 한국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따스한 온기는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이 이케다 씨에게는 한국인은 매우 친절하다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에서 생활하면 쌀쌀한 일본인을 자주 만난다. 필자는 도쿄에서 6년간 생활했다. 우리가 정으로 호소해서 마음을 열려고 해도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벽창호처럼 단단한 벽이다. 일본인의 친절에 감동해서 그 친밀감을 공적인 관계까지 발전시키려고 하면 큰 오산이다. 일본인의 친절은 친절 그 자체로 끝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은 공적인 관계를 뛰어넘어서 개인적인 관계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물론 ‘정’이 지나쳐서 공과 사를 구분하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

일본인의 친절과 한국인의 정, 그 문화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면, 서로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하는 창구와 서로의 내면을 다시 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 일본인과의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4차산업행정뉴스 기자  69894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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