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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효사정과 거짓말
왕현철(전KBS PD/왕PD의 토큐멘터리 조선왕조실록 저자)
2023년 11월 15일 [4차산업행정뉴스]



한강 변에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는 효사정(孝思亭)이다. 

 

효를 생각하는 정자로, 지하철 9호선 흑석역 1번 출구로 나와서 곧장 언덕길로 올라가면 있다. 노한이 지은 정자이고, 그는 세종의 이모부로서 우의정을 지냈다.

노한은 어머니, 개성왕씨 대부인이 상을 당하자,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그 자리에 별장을 지어서 일생을 살면서 어머니를 추모했다. 또한 그는 정자에 올라서 멀리 북쪽을 바라보면서 개성에 묘를 쓴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동국여지지>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효사정은 금천현의 북쪽 20리 노량나루 남쪽 언덕에 있었다. 효사정은 이런 자료와 시문을 참고해서 옛터와 가까운 자리를 택해서 현재의 자리에 정자를 세웠다.

효사정 현판은 노한의 17대 손, 노태우 대통의 친필이다

효사정 이름은 노한의 맏아들과 동서지간인 지돈령부사 강석덕이 지었고, 강석덕의 아들이자 의정부 좌찬성 강희맹는 <효사정기>를 남겼다.

“효는 감싸두면 한 마음의 덕이 되고, 드러나면 온갖 행실의 근원이 된다. 천자부터 백성까지 효는 비록 크고 작고, 멀고 가까움이 다를 수 있으나 그 근본은 같다. 그래서 왕후가 효도하지 못하면 천하와 국가를 보존할 수 없고, 경대부가 효도하지 못하면 종묘를 보존할 수 없으며, 사대부와 백성이 효도하지 못하면 제 몸도 보존할 수 없다.” -<강희맹의 효사정기> 中에서-

효사정은 노한의 효에 대한 마음이 담겨서 효의 상징으로 유명했고, 한강을 끼고 있는 정자 중에 제일의 경치로 쳤다. 그리해서 조선 초기의 여러 문인들이 다녀가서 시문을 남겼다.



효사정에서 바라 본 한강과 그 주변의 모습

“효사정은 한강 위에 우뚝 섰고, 자손도 효성스러워서 아름답다.” -정인지-

“산세가 넓은 뜰 머리에 구불구불한데, 신령스러운 기운을 잉태해서 어느 때나 아름답다.” -신숙주-

“효사정은 푸른 물결 위에 우뚝 섰고, 그곳에 오르면 어버이 생각이 저절로 나네.” -정창손 

 

이 외에 김수온, 서거정, 이승소 등도 시문을 남겨서 효사정에 담긴 효를 기리면서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했다.

노한은 3년의 시묘살이와 효사정으로 인해서 효의 상징으로 여겨서 칭송받았다. 반면, 어두운 면도 있다. 그는 세종 때 제2차 파저강을 정벌한 이천의 공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났다. 세종은 화를 냈다.

“말단 관리도 생사의 기로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대신이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다니, 대신의 체통에 어긋난다. 파직하라.” <세종실록 19년 10월 17일>

세종는 이모부이자 우의정이었던 노한을 파직시키고, 두 번 다시 부르지 않았다. 그는 7년간 야인 생활을 하다가 68세에 세상을 떠났다.

효사정에 올라서 효를 생각하는 깊은 마음과 함께, 고위 관료와 정치 지도자의 거짓말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를 댄 세종을 떠올린다.

4차산업행정뉴스 기자  69894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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