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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선의 빈대와 정주영 회장의 빈대
왕현철 (전 KBS PD/왕PD의 토큐멘터리 조선왕조실록 저자)
2023년 11월 07일 [4차산업행정뉴스]

 

 

                                          빈대 사진

 

[4차산업행정뉴스=4차산업행정뉴스기자]  21C 지구촌에 빈대가 들끓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빈대는 살충제에도 살아남을 만큼 강한 내성으로 다시 돌아왔다. 방역 당국은 골머리를 앓고, 새로운 살충제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빈대’를 검색하면 성종 10년에 처음 나온다. 제주 사람 김비의 등은 표류해서 유구국에 머물렀다. 그들이 본 풍속은 우리와 너무나 달랐다. 성종은 그 기이한 이야기를 듣고 홍문관이 기록해서 남기게 했다.

“남녀가 모두 구슬로 귀걸이를 하고, 맨발이었으며, 남자는 상투를 틀고, 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왔고, 여자는 머리가 무릎이나 발뒤꿈치까지 내려왔습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고, 가마솥이 없어서, 흙을 뭉쳐서 솥을 만들어 짚불로 밥을 짓는데, 5, 6일이 지나면 다시 만듭니다.” <성종실록 10년(1479년) 6월 10일>

그곳에 사는 동물과 곤충도 소개했다. 두꺼비, 뱀, 달팽이, 지렁이, 개똥벌레 등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었고, 등에(蝱), 연가시새끼(蜱) 등 생소한 동물도 있었으며, 모기, 파리와 빈대도 있었다. 빈대는 취충(臭蟲)으로, 냄새나는 곤충으로 기록돼 있고, 조선왕조실록의 최초 기록이다.

성종 때의 문신 성현은 빈대를 관찰하고 시를 남겼다. 그는 <악학궤범 3권>을 완성하고, <허백당집> <용재총화>도 남겼다. 성현은 하늘 아래 창조한 모든 생물은 쓰임이 있다고 했으나 빈대에게는 나쁜 점수를 주었다. 빈대는 알을 많이 낳고, 낮에는 벽에 숨고 밤이 되면 옷 솔기에 끼어들어서 병든 몸뚱이까지 파고든다고 나무랐다.

“사람의 사랑을 못 받는 게 당연하구나 어이해 이토록 사람을 괴롭히느뇨”<허백당시집 제2권>

숙종 때의 실학자 홍만선은 그의 저서 <산림경제>에서 빈대나 이(虱)를 없애는 방법을 소개했다.

“단옷날, 다리미에 대추를 태워서 침상 아래에 놓아두면 빈대가 생기지 않고, 또한 흰말의 발굽을 태워서 침상 아래에 두면 빈대가 피로 변한다.”<신은지>

또한, 빈대는 사람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나쁜 기운을 가져와서 없애야 하는 존재였다. 2월 초, 이른 새벽에 솔잎을 문간에 뿌렸다. 솔잎으로 빈대를 찔러서 사악한 기운을 없앤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빈대와 관련된 속담도 나쁜 의미가 많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 ‘집이 타도 빈대 죽으니 좋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안 남는다.’

빈대는 이처럼 조선시대도 환영받지 못한 불청객이었으나 그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정주영 회장이다.

정주영 회장은 네 번의 가출을 시도해서 서울에 왔다. 그는 서울에 연고가 없어서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인천의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부둣가의 노동자 합숙소에서 잠을 해결했다.

합숙소에서 그를 괴롭히는 것은 빈대였다. 잠을 도저히 잘 수 없을 정도였고, 빈대를 피하려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잠을 청하기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빈대가 테이블의 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사람을 물었다.

노동자들도 지혜를 짰다. 테이블의 네 다리에 물을 담은 양재기를 하나씩 고여 놓았다. 빈대가 양재기에 익사하기를 기대했으나 이것도 소용이 없었다. 빈대들은 노동자들의 기대와 달리,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서 사람 몸을 향해서 툭 떨어졌다.

정 회장은 빈대를 보고 깨달았다. “보잘것없는 빈대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머리를 쓰고 죽을힘을 다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지 않는가. 결코 중도에서 포기하지 말자…. -<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 中에서 -

정 회장은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 ‘빈대보다도 못한 X….’이라고 야단을 쳤다.

21세기 지구촌에 들끓고 있는 빈대 뉴스를 들으면서 ‘빈대보다도 못한 X….’이라는 핀잔은 듣지 않아야겠다.

 

 

왕현철 전 KBS PD는 퇴직한 후, <조선왕조실록> 완독에 도전해서 2021년 <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 제 1권에 이어서 2022년에 제 2권을 출간했다.


 

4차산업행정뉴스 기자  69894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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