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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무히카 고(故) 우루과이 청빈 대통령의 시간 철학과 진정성
2025년 05월 26일 [4차산업행정뉴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 사망(향년 89세)

[4차산업행정뉴스=김국우논설위원]   6.3대선이 코앞에 왔다. 9일 남는 정치판은 이념 싸움터로 변질돼 혼란스럽다.

 
“청빈한 대통령이냐 범죄 전과 대통령이냐”하며 편 가르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 산불 재난에 기부하거나 월급을 반납한 우리 정치인들 혹시 계신 가? 왜 우리에겐 존경받는 청빈한 정치인이 없을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가능할 일인가. 이번 대선에서 김문수 후보의 정직함과 부인의 진실 됨이 부상이 되면서 기적 같이 민심을 사로잡고 있지 않는가?


우리 대통령들의 최후는 존경과 사랑 보다는 늘 비극적이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유전인자부터 잘못된 탓일까. 무당굿 풀이라도 벌려야 할 건지. 풍수지리 탓일까. 우리 정치가들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쌓기 위해 아귀다툼에만 집중한다. 왜 우리에겐 존경받는 청빈한 정치인이 없었을까?

구속을 면한 두 대통령은 아들 구속으로 부친을 대신한 옥살이를 한 셈이다. 탄핵과 구속을 반복하며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매우 불편하고 불안한 점괘였다.

우루과이가 비록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해도 호세 무히카 같은 청빈한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너무도 존경스럽고 부러움을 살 일이다. 그는 게릴라 출신인 정치계 거두이자, 중남미 좌파 지도자의 아이콘인 것이다.

 
검소하고 소탈했던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13일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60~70년대 군사독재정권 때 도시게릴라 운동가였다. 하수구를 거점에서 게릴라투쟁을 한 탓에 사람들은 ‘로빈 후드’로 불렀다.

 
교도소 땅굴을 파 두 번이나 시도한 탈옥수로, 37살에 다시 투옥돼 14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기수다. 2009년 11월 대선에서 중도좌파연합 후보로 우루과이 대통령이 됐다. 수도 외곽에 있는 소박한 집에서 가사도우미도, 보안요원도 거의 없이 살았다. 

 

항상 캐주얼한 옷차림에 1987년형 하늘색 폭스바겐 비틀 차량을 직접 몰고 다녔다. 월급의 상당 부분을 기부하며 일부 언론은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러나 그는 “삶엔 가격 레벨이 붙어 있지 않으니 나는 가난하지 않다.”고 늘 주장하곤 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대통령 재임기간 소박하고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퇴임 후 상원의원으로 활동했으나 고령에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더 이상 활동이 어려워졌다며 국민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노타이에 낡은 통바지, 싸구려 운동화, 헝클어진 머리칼은 무히카의 패션. 삶도 말그대로 무소유였다.

정적들은 그의 정책을 비난도 했다. 허나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부정부패나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비난에선 자유로웠다. 취임 직후 지지율 52%에서 임기 말 약 70%를 유지했다. 당시 유럽 발 경제위기에도 우루과이는 매년 평균 5.7% 경제성장을 했다. 

 

취임당시 그의 재산은 우리 돈 195만 원, 19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과 허름한 농가, 농기구 몇 대가 전부다. 자녀는 없고 우루과이 첫 여성부통령 아내 루시아 토폴란스키와 다리 잃은 반려견 세 식구였다.

그는 가난이 아닌 절제를 그의 인생철학으로 삼았다. 내핍과 다른 절재는 필요한 만큼 소비하되 낭비하지 않는 것. 무엇을 살 때 그것을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그 돈을 벌기 위해 사용한 시간으로 살았다. 

 

이 시간에 인색해져야 하는 법. 시간을 아껴서 정말 좋아하는 일에 써야 한다. 시간을 자신 위해 쓸 때라야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자유롭고 싶다면 소비에 냉정해져야 한다고. 재임 기간에는 월급의 90%를 기부했고 관저는 노숙자에게, 별장은 시리아 난민 고아들에게 내줬다. 

 

자신은 쓰러져가는 시골농가에서 대통령 되기 전에나 재임 기간과 퇴임 후에도 평범한 농부의 삶을 살았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화장 돼 평생 거주하던 농가 정원에 안치 됐다.

 
무히카의 매력은 탈권위적이고, 친근하면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다. 우루과이 국민은 “페페(PePe)”라는 애칭으로 그를 불렀다. 그는 “수십 년간 내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다. 인생의 큰 교훈이었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성공은 승리가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 정치가도 이번 대선에서 무히카를 닮아보길 기대해 본다.

김국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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